회사 동기 하나가 연구소에 왔대서 잠깐 얼굴을 보았다. 웬일인가 했더니 '직급 간 공감과 소통을 위한 간담회'를 연구소에서 진행한대서 아침부터 와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도 하는구나. 넌 그럼 XX팀 대표로 온 거야?"
"네. 제가 아직도 저희 팀 막내라서요."
'막내라서' 왔다니, 소통의 통로가 망가진 모습의 전형 같아 안타까웠다. 남들 가기 싫은 자리인데 막내라고 가고 싶겠는가. 그저 표현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막내를 보냈다는 것은 사람들이 소통을 위한 간담회가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하리라 예상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말해준다. 만약 이 간담회를 통해 소통이 개선될 것을 믿고 있다면 이렇게 아무나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소통 따위 신경도 안 쓰고 막내를 내보내고 있으며, 간담회 같은 것이 소통을 정상화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도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공감'이니 '소통'이니 하는 키워드가 붙는 자리에는 냉소를 보내게 된다. 아마도 '행복'이니 '성공'이니 하는 단어들이 책 제목에 박혀있으면 믿음이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행복이나 성공 같은 고도로 개인화되어 있으며 세련된 관념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책을 펴보고 싶지 않다. '공감'이니 '소통'이니 하는 개념에 신경을 써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간담회나 면담 같은 멍석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서서히 빚어지는 개념일 것이다. 싹을 틔우듯 가꾸어야 할 일을 되지도 않는 꺾꽂이로 억지로 쑤셔넣고 있다.

RPG게임에 공감, 소통 스킬이 있다면 그것은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패시브 스킬일 것이다.

Posted by 람보질롯